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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시사위크
보도일 2016-08-04
원문 보러가기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75453
기자 권정두
 
▲ 지난 4월 한솔케미칼 노동자의 산재 신청과 관련해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삼성전자 납품업체인 한솔케미칼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가 백혈병 투병 끝에 사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직업병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또 사망사고가 나자 사회적 차원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또 한 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눈을 감은 것은 지난 3일. 1984년생, 33살에 불과한 이모 씨가 백혈병 투병 끝에 사망했다.

그는 지난 2012년 1월 한솔케미칼에 입사했다. 조금 늦은 나이였지만, 탄탄한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한솔케미칼은 삼성 등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얼마 뒤 첫 아이까지 태어나 그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그가 맡은 업무는 각 화학약품을 용기에 담아 저울로 무게를 계량한 뒤 이것을 반응기에 투입하고, 반응기에서 혼합을 마치면 용기에 담아 포장하는 일이었다. 이 작업을 마친 뒤엔 반응기를 세척했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출하량이 늘어 고된 업무가 계속됐다. 하루 12시간은 보통이고, 20시간 넘게 일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지난해 들어 감기 등 아픈 날이 많아지더니, 급기야 10월 중순엔 몸에 반점까지 생겼다. 동네 병원에 갔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고, 염증수치는 높아져만 갔다. 결국 종합병원에 입원한 그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그의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었다.

병세는 빠르게 악화됐다. 세살 된 딸과 갓 태어난 아들을 한창 안아줘야 할 때였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그는 “딸아이를 안기에도 힘에 부쳐 벌벌 떠는 내 손을 보면 속이 타들어간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었을 뿐인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9개월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딸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상기 씨. 그는 300일 넘게 삼성 건물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반올림/ 이기화 사진작가>

◇ 다른 시간, 다른 장소, 같은 이야기

 

이씨가 숨을 거두기 이틀 전인 지난 2일. 이날은 황상기 씨가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3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초라한 농성장 뒤로는 삼성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황씨는 지난 2007년 3월, 딸을 먼저 떠나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업에 나섰던 딸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에 입사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날부턴가 딸은 아프기 시작했고,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얼마 뒤 그는 자신이 몰던 택시 안에서 딸을 떠나보내야 했다.

딸이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삼성과 싸우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같은 피해를 입은 ‘동지’들이 생겼고,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함께했다. 시민들이 모금한 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딸의 죽음 이전과 이후 180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가 외치는 말은 달라진 것이 없다. 제대로 사과하고, 정확한 이유를 밝히고,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조치를 취하고, 공정한 보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입장 역시 9년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황씨는 “많은 사람들이 해결된 줄 안다. 하지만 삼성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삼성의 공식입장 발표와 조정위원회의 조정, 삼성의 대책 발표 등이 있었지만, 황씨와 반올림은 삼성의 위선을 주장하며 300일 넘게 천막을 지키고 있다.

◇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하나

황씨의 딸과 이씨는 9년여의 시차를 두고 숨졌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화학제품을 다루는 일을 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점이다. 두 사람 뿐 아니다. 그 사이 비슷한 유형의 희생자들도 다수 확인됐다.

만약 황씨의 딸이 사망한 뒤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면, 이씨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병을 유발하는 화학물질과 작업방식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했다면 말이다.

병에 걸린 뒤 겪는 어려움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황씨의 딸에 대해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끝에야 법정에서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씨 역시 마찬가지다. 이씨는 지난 4월, 반올림·삼성노동인권지킴이·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시민단체가 결성한 ‘전자산업 백혈병 산재 인정 촉구 노동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 3일 눈을 감을 때까지 산재 인정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이씨는 자신이 어떤 화학약품을 다뤘고, 왜 병에 걸렸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한솔케미칼은 현장조사 참여를 거부했고,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 줄 책임이 있는 근로복지공단은 그 책임을 외면했고, 석 달 넘게 역학조사도 시작하지 못한 채 산재 승인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솔케미칼은 백혈병 발병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과 사회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또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의 산재를 조속히 승인하고, 정부는 전자산업 전반에 만연한 노동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9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황씨의 요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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